뉴스

무등일보

[무등칼럼] '키세스', 시지프스의 신화를 찾아서

입력 2025.11.12. 17:39 수정 2025.11.12. 18:03

온몸을 은박으로 감싼 채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밤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지새우던 '키세스'들을 생각한다.

윤석열이 대명천지에 내란을 일으킨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극복은 첩첩산중이다. 검찰 집단의 난동은 실 한오라기의 염치도 없이 참람하고, 중앙지법 판사 지귀연은 저급한 법기술로 이나라 사법부의 하찮은 몰골을 증언한다. 머리만 덤불에 집어넣고 호가호위하던 한덕수 등 공모자들, 아직도 천지 분간 못하고 궁둥이를 흔들어댄다.

부패의 힘, 이나라는 복도 많지

검찰과 법원, 최전선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당사자들이 총을 거꾸로 돌려 국민을 정조준하는 행태다. 또 다른 내란 수괴 전두환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형국이다. 대한민국 이 이룩해낸 민주화가 겨우 이건가 싶기도하다.

다른 한편 윤석열 내란에 감사해야할 지경이다. 내란이 아니었던들, 이나라 사법부가, 언필칭 엘리트라는 판 검사라는 자들이 저 지경일줄 상상이나 했겠으며, 바로 잡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반푼어치도 안되는 권세 등에 없고 안하무인에 오만불손이 처량할 지경이다. 윤석열이라는 부패의 총화, 내란이라는 형상으로 곪아 터진 것이다. 부패의 힘에 떠밀려 스스로 자멸의 아우팅을 한 것이다.

로원일모(路遠日暮),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까마득하다. 이대로 말 수는 없다. 눈보라 속 은박의 반짝임, 서로를 데우던 작은 숨결, 서로를 보태던 낯선 손들이 일렁인다. 내일이면 다시 굴러떨어질 걸 알지만, 오늘 혼신을 다해 바위를 저 언덕으로 밀어 올리는 까뮈의 시지프스들이다. 인간에게 불을 전달하고, 의연히 자신의 간을 내어준 프로메테우스의 마음이다.

'우리는 빛으로'를 주제로 한 16회 광주여성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배제와 차별이라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비추며 연대하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여성·소수자)이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 심상찮다. 그렇다. 그들은 대중이 거들떠보지 않는 여성이나 소수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국민이다. 지난겨울 '빛'으로 아스팔트와 광장을 메웠던, '빛'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이들이다. '소년이 온다'의 동호가 걷고자 했던 '꽃 핀 쪽'을 향한 마음이다.

'키세스', 그들이 궁금하다. 어떠한 이름도, 권세도, 영화도, 대변할 그럴싸한 무엇 하나 없이 존재 그 자체인. 이 무명의 모두는 국가의 위기에 바람처럼 나타나 자신들의 심장을 내놓고는, 그렇게 홀연히 돌아갔다. 그 흔한 전리품을 꿰차려 드는 이 하나 없다.

그들은, 지난 대선 경선 때 이준석이라는 '생물학적으로 젊은' 정치인이 한낱 이익을 위해 갈라치고 배척하고, 혐오의 표적으로 삼았던, 죄없이,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 이들이다. 윤석열에 고통받는 이 나라 모든 소시민과 노동자들이다.

아무도 아닌, 모두의 행렬은 각별하다. 지난겨울 내란 진압의 선봉에 선 이들은 저 기괴한 판검사도, 아파트를 6채씩 보유한 국회의원도 아니다.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빡친 고양이 집사 연맹' 등등. 각자의 취향으로 무장한 누구나의 숨결이 광장을, 아스팔트를 압도했다. 그 작고 사적인 누구나의 몸짓이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냈다.

그 건너편에는 소위 전 대통령이니, 전 국무총리니, 전 법무부 장관이니, 검사니, 판사니, 유학파니, 남자니 하는 거창한 견장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무명의 모두는 저 이름짜한 하이에나들과 달리 도망치지도 않고, 가당찮게 허세 등등 하지도 않는다. 부당한 세계 앞에 개개의 인간으로, 무명으로 존재할 뿐이다. 행렬은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사의 고비마다, 고삐 풀린 권력과 제도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을 때, 가장 앞장서 거리로 나섰다. 이름도 없이, 영예도 없이.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20세기 초 유럽의 여성참정권 운동, 남미의 인권 시위, 이란의 히잡 시위, 1980년 광주의 여성항쟁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는 공통의 진실을 안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존엄의 선언이다. 언제나 인류의 가장 낮은 자리를 점유해서, 그들이 일어설 때 세계의 중심은 그렇게 흔들렸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들'에게 거창한 이름은 번거롭다. 이름 이전의 윤리, 존재 자체로 다가가면 될 일이다. '자세히, 오래' 바라보면 될 일이다. 어쩌면 이 눈길이야말로 위대함과 만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일 것이다.

까뮈의 말이 사무친다. "정상(頂上)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시지프스가 행복한 이유는, 다시 지상으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 혼신을 다한 때문일 것이다. 그럴싸한 권세가 아니라 행위로 세계를 떠받치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광장의 무명들이 공화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힘이다.

바위가 떨어질 걸 아는 한, 행복하다

다시 눈이 올 것이다.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설' 것이다. 한 사람의 숨결, 한 사람의 손길 하나하나를 기억해야 한다. 이 공화국의 새벽을 밀어 올리는 힘은 거대한 이름이 아니라 눈보라 위에, 은박을 두르고 돌을 다시 밀어 올리는 키세스들에, 그 겨울밤에 있다.

조덕진 주필

    최근 본 매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