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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

[교단칼럼] 그 해, 봄 광주의 따뜻한 언어

입력 2025.02.18. 18:31 수정 2025.02.18. 20:32
김유진 산정중 교사

2023년 봄, 민주·인권을 주제로 한 국제교류 프로그램 인솔교사 역할을 수행하고자 학생들과 함께 프랑스의 유네스코 본부와 스위스의 OHCHR(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등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정 중 유네스코 한국 본부를 방문하여 진행된 간담회 자리에서, 광주의 고등학생 한명은 간담회에 참석한 외교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5·18 민주화 운동 기록 유산이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외교관의 대답은 이러했다. "5·18 민주화 운동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발전하는데 있어서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참여, 공동체 정신, 자치 등의 민주주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있었으니까요." 2024년 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100년 만에 하계 올림픽이 열렸다. 하계 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축제를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고자 프랑스에서는 130개 학교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30개 학교 프로젝트는 프랑스의 130개 학교와 130개 국가의 한 학교가 연결되어 하계 올림픽을 주제로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광주의 산정중학교와 프랑스 샌생드니에 위치한 테오도르-모도느 중학교가 연대하여 공동 교육과정이 운영되었다. 그리고 2025학년도 4월에 테오도르-모노드 중학교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일정 대부분을 광주에서 보낼 예정이다.

현재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소통을 통하여 일정을 협의 중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프랑스 쪽에서는 유네스코 기록 유산인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사적지, 유네스코 지질 유산으로 지정된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비롯한 문화 예술 자원 등에 관심을 갖고 일정을 보내길 원한다. 5·18 민주화 운동 사적지를 탐방하기 전에 프랑스 학생들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교육과정을 설계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5·18 민주화 운동은 전 세계에서 가치가 인정되고 관련된 기록과 장소에 대한 보존의 필요성을 존중받고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은 수상 소감 중,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양심이 거대하고 압도적인 국가의 폭력에 맞서 싸우다 아스라이 사라져 갔던 수 백명의 혼이 서려 있는 도시가 광주이다.

그리고 당시 희생자, 부상자, 생존자, 그의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지역 공동체가 여전히 트라우마를 치유 중인 도시가 광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세계인권도시 포럼 운영, 광주인권상 수여 등 1980년 5월의 광주가 남긴 양심과 정신적 유산을 보살피고 실천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적어도 양심을 지닌 순수한 인간이라면, 광주의 광장에서 도저히 내뱉지 말아야 할 언어들이 있을 것 같다. 5·18 민주화 운동을 오염시키는 때 묻은 언어들, 그리고 끊임없는 폄훼와 왜곡으로 힘겹고 버겁지만 1980년 5월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광주를, 변화시켜야만 하는 후진적인 도시, 비로소 구제받는 불행한 도시인 듯 표현하는 차디차고 뚝뚝 끊어지는 언어들이 그것이다. 제발 광주의 광장에서는 1980년 5월 그때처럼 따뜻하고 정의로운 언어들로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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